"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Rene Descartes (1596-1650)
철학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문구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의 격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말을 데카르트가 처음 한것은 아닙니다
이미 더욱더 먼 과거부터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철학자들이
여러번 언급해온 개념이지만
르네 데카르트가 정형화 시키고 고착시켜 유명해지게 된것이죠
그럼 이 말의 본 뜻은 무엇일까요?
르네 데카르트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알기위해
그가 살던 시대상과 배경을 먼저 간단하게 알아봅시다
르네 데카르트는 중세시대의 마지막을 살던 사람으로
근대사회를 개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중세시대 까지는 종교가 주된 사상들을 바로잡고 있엇기에
교회가 하는 말이 곧 진리이자 상식이었죠
그런데 데카르트는 순응적인 사람이 아닌 얄궂게도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에 나오는 온갖 기적과 이행들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어했죠
데카르트는 자기 안에서 커져가는 의심을 지우려고 노력하기보단
아예 키울수 있을만큼 키운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모든 의심에 대한 답안을 제시한뒤 자신이 납득할수 있을 만하다면
의심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 여긴거죠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의심을 더이상 키울수 없을정도로 키우기 시작합니다
더이상은 의심하지 못할때까지 모든것을 의심하기 시작하죠
데카르트에겐 감각이나 선험마저 믿을만한것이 못되었습니다
우리의 오감은 오작동하기 매우 쉬우며
당연하다고 믿고있던 상식이나 기억마저 왜곡되기 십상이기 때문이죠
의심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우선 주변의 모든것을 의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만큼은 절대 의심할수 없는 사실이다!' 라는 곳까지 도달하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모든것을 의심한다면 무얼 믿을수 있다는거죠?
이미 책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작성한다는 현재의 이 사실만큼은 참 아닌가요?
안타깝게도 현실과 그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믿을만한게 못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미친 과학자가 제 뇌를 꺼내 통에 넣고
전기 자극을 주어 제가 이 글을 쓰고있다고 착각하게 만들 뿐이지
실제로는 제가 진짜로 글을 쓰는게 아닐수도 있는거죠?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사실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없는걸수도 있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억까지! 적어도 이게 사실이라는건 틀림없잖아!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사실, 그리고 그 근거 모두
사실이 아닐수 있습니다
어렸을때 즐겨보던 지미 뉴트론이라는 만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 등장하는 칼 위저라는 아이는 꿈속에서 자기 뇌를 꺼내들며
'이게 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어?' 라고 말합니다
이제 자기 주변의 모든것들이 얼마나 신뢰 불가능한지 감이 오시나요?
그럼 주변의 모든걸 신뢰할수 없는 상황에서 대체 뭐가 틀림없는 사실이 될까요
아무것도 믿을수가 없는데 세상 무엇이 믿을만한 사실일까요
데카르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무리 누군가 자기를 속인다 하더라도, 내가 잘못된 환각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그 속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순간에 내가 사고한단 사실은
절대로 반박할수가 없다고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이게 앞서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본 의미이죠
어떤 나쁜 악령이 자기에게 환상을 보여준다 한들
내가 병에 걸려서 감각이 이상해지든
어쨋든 거기에 속는 '나'라는 개념이 존재해야 하고
내가 인지하는 것이 잘못되었든 아니든
어쨋든 인지를 한것은 사실이기 떄문에
이것만큼은 이거리얼 절대 반박불가 라고 여긴거죠ㅎ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해서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건 아니라는 겁니다
무언가가 사고를 할수 있든 아니든 존재 자체는 할수 있습니다
또한 존재가 생각에 선행되야하는 과정이기에
이 명제의 '고로(Ergo)'라는 부분을 '때문에'라고 해석하면 문제가 생기죠
데카르트가 하고 싶은 말은
나라는 존재는 생각을 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하는게 확실하고
그 생각한다는 현상이 일어나는것도 확실하다 라는 말인겁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철학은 유아론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유아론(唯我論)의 '유아'는 메스가키할때 어린이(유아)가 아니라
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뜻의 한자어인데요
이 세상은 사실 실체가 없고 모든건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란 이론입니다
물론 철학의 사유일뿐 과학 이론은 아닌데요
대표적인 예시로는 장자의 호접지몽이 있겠습니다
장자는 어느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고
그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꿈에서 깨고나서도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속의 나비가 실제 나고 지금의 내가 나비의 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죠
결국 믿을만한건 나의 존재 뿐이니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이 아닌가 하고 데카르트의 의심을 계속 연장해나간것이
유아론적 관점이 되겠습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사상은 근대 철학 뿐이 아닌
현대의 사회상에도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특히 현대 과학의 대세가 양자역학으로 들어오며
더욱 많은 영향을 주게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따르면 감각과 선험은 믿을만한게 아니고
철저한 논거에 의해 증명된 사실만이 믿을만하기 때문에
중세까지 주권을 꽉 쥐고 있던 종교계에 의한 상식들은 무너지고
근대부터는 과학을 통해 입증된 사실만이 상식으로써 받아들여지게 되었죠
게다가 양자역학에 따르면 세상 모든것은 입자와 파동성을 동시에 갖기에
확률적으로 존재할수밖에 없다하니 데카르트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 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종교를 대체하여
둘이 대립구조가 되는건 바람직하지 않죠
과학적 근거를 든 사실이 믿을 만하다고 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다 참이 아니라고 말할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번 사실로써 증명된 일이라 해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기록이 수정되고 이론이 보완될수 있으니
맹목적으로 과학을 신뢰하는 과학만능주의는 오히려 데카르트 철학에 어긋나겠죠
데카르트의 이런 주장은 얼핏보면 세상에 믿을게 하나없다는
회의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질수 있겠습니다
물론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무주의적으로 갈필요까진 없겠죠
데카르트는 '여기 만큼은 안심하고 서있을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을 제시한거지
만사를 불신하고 살라는 뜻에서 주장을 펼친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해서
'돌다리도 믿을수 없는데 나무다리는 절대 건너면 안돼!'라고 생각하는건
그다지 바람직한 사고가 아니겠죠
데카르트가 한 의심은 믿기 위한 의심이지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었기 떄문입니다
저는 불신과 의심을 다르게 보고,
또한 맹신과 믿음도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맹신은 불신과, 의심은 믿음과 이어져 있다고 여겨요
문 너머에 누군가가 '엄마 왔으니 문좀 열어달라'고 해서
무작정 믿고 열어주는 아이와
도둑을 조심하란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정당한 증거를 내놓으라 한뒤 열어주는 아이 중
누가 더 엄마를 잘 믿는 아이일까요
의심은 확실한 믿음을 위한 발판이자 이정표로써의 역할을 해야지
의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아무런 도움도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신뢰하게 되었다면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따라야 건전한 인생이지요
물론 중간중간 올바른 길로 가고있는지에 대한 검토또한 중요하겠지만요
저는 여러분이 의심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의심을 지배하는 분들이 되시길 소망하며 이 포스팅을 마칩니다^^